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?1953년 중학교 1학년이던 조병두는 하루아침에 가장(家長)이 됐다.
?독립군 출신으로 군인이었던 아버지가 6·25 전쟁 중에 전사(戰死)했기 때문이다.
?6남매 중 장남이었던 그는 동생들과 새벽부터 신문을 배달했다. 배달이 끝나면
서울 종로구 가회동 모퉁이에 있는 국숫집에서 불어 터진 국수를 싸게 사서 배를 채웠다.
"같이 신문을 돌리던 친구는 나보다 돈이 없어 국수 사 먹을 엄두도 못 냈어요.
?매일 국수 한 그릇을 그 친구와 나눠 먹었지요. 그걸 본 국숫집 주인이
어느 날부터 국수를 배로 담아줬어요."
?조씨는 "내가 남에게 먼저 베푸니 주변 사람들도 베풀기 시작하더라"며 "
?그때 '내가 잘돼서 꼭 없는 사람 도와줘야겠다'는 마음을 먹었다"고 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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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로부터 63년 후, 조씨는 직원 50명, 연 매출 150억원대 회사의 회장이 됐다.
?지난 1980년 조씨가 창업한 포장재 제조사인 '동주'라는 회사다.
?조씨는 중학생 때 다짐을 지키기 위해 악착같이 번 돈 3억원을 들고
?1999년 모교(母校)인 성균관대를 찾았다. "돈 없어 공부 못 하는 학생들 장학금으로 써주세요."
?그때를 시작으로 조씨는 총 27억원을 성균관대에 장학금으로 기부했다.
?조씨의 도움으로 성균관대 학생 250여 명이 장학금을 받고 학업을 마칠 수 있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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지난 20일 조씨는 모교에서 한 통의 전화를 받고 눈물을 글썽였다.
?"선생님의 장학금을 받고 공부해 졸업한 학생들이 후배들을 위해 1억원을 모아 내놨다"는 전화였다.
조씨는 "졸업해서 취업한 것만 해도 기특한데 후배들을 위해 한 푼 두 푼 돈을 모아 내놨다니,
?역시 '기부 바이러스'는 전염성이 강하다"며 웃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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장학생들의 대(代)를 잇는 기부는 지난 2010년 시작됐다.
?조씨 이름으로 장학금이 지급된 지 10년이 되던 해였다. 10주년을 기념해
장학생 200여 명이 한데 모인 자리에서 장학생 대표 김순흥(38)씨가
?"우리가 받은 만큼 후배들에게 조금씩 돌려주면 어떻겠느냐"고 제안했다.
?장학생들이 즉석에서 동참해 월급의 일부를 기부하기로 약속했다.
?이들은 한 달에 적게는 1만원부터 많게는 10만원가량의 돈을 6년간 꾸준히 기부해왔다.
?이렇게 모은 1억원의 돈을 장학기금으로 내놓은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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성균관대 법대를 졸업하고 법무법인에서 변호사로 일하고 있는 원영일(43)
씨는 "대학 졸업반이던 2001년에 장학금 450만원을 받았다"며 "
?고시생에게 그 돈이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었다"고 했다.
?원씨는 지금까지 약 1000만원을 내놓은 '최고액 기부자'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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갓 사회생활에 나선 장학생들도 기부 행렬에 동참하고 있다. 대기업 신입사원 이수현(26)씨는
?"첫 월급에서 3만원을 떼서 기부하던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"며 "
?대학 시절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내내 도움만 받았는데,
?내 힘으로 도움을 줄 수 있어서 뿌듯하다"고 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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조씨는 감사 인사를 하러 찾아오는 학생들에게 꼭 이런 당부를 한다고 했다.
?"나도 대학 시절 누군가가 준 장학금이 없었다면 졸업을 못 했을 겁니다.
?그 도움을 잊지 않아서 지금 이렇게 기부를 하고 있는 거죠.
?여러분들도 꼭 이 기부를 이어 나가 주세요."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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기고자:이슬비